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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제7공화국으로 만들어 나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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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제7공화국으로 만들어 나갈 때

[복지국가SOCIETY]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때

21대 국회가 개원했다. 국회가 개원한 후 일주일 이내에 본회의를 열어 국회의장단을 선출하도록 하는 국회 규정을 지킨 건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33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물론 현안에 합의하지 못한 미래통합당이 중간에 퇴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말이다.

식물국회와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덮어쓰고 사회적 신뢰도에서 언제나 바닥 수준을 면치 못하는 국회가 21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시민은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4년 뒤에 '역시나' 하는 평가를 받지 않길 간절히 기대한다.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는 한국 사회

시민은 촛불혁명으로 중앙정부의 권력을 바꾼 데 이어 지난 2018년 지방정부의 권력 지형을 바꾸었고, 이번에는 국회의 권력 지도마저 예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버렸다. 시민은 정부여당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지지와 권한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권한을 얻은 이들의 능력과 역량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감이 코로나19 대응에서 드러났다. 정부는 이전과 달리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시민의 협조를 구했으며, 시민은 다양한 방식으로 민·관 협력 모델을 만들고 공동체적 방식으로 대응했다.

코로나19 이후 선진국이라고 믿었던 국가들이 방역에 실패하고 사회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선진국에 대한 환상을 거둬들였다. 그동안 우리 스스로를 과소평가했던 자존감도 다소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러 분야에서 한국 사회가 우수성과 역동성을 발휘하면서 세계가 우리 사회를 다시 주목하고 있다. 물론 제비 한두 마리가 왔다고 봄이 왔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흐름과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국제직접민주주의 전도사 노릇을 하고 있는 브루노 카우프만 씨가 지난 해 국내에 방문했을 때, 나는 함께 간담회를 가진 일이 있었다. 2년마다 열리는 직접민주주의 국제포럼 준비 차 방한했던 카우프만 씨는 스위스 출신답게 직접민주주의의 필요성과 의미를 강하게 역설했다.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데는 대의제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와 함께 시민의 직접 참여 부족에 원인이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의 주장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스위스와 함께 대한민국이 직접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예측이었다.

스위스는 1848년 헌법을 제정한 이래 200여 회의 크고 작은 헌법 개정을 해왔다. 물론 이는 추상적 선언에 그치는 우리나라 헌법과 달리, 비교적 구체적인 내용까지 담고 있는 스위스 헌법의 특징에 기인하기도 하겠지만, 인구 10만 명이 제안하면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 헌법 개정 발안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스위스는 국민이 요청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내용들은 헌법에 담으려고 노력해왔고, 국민투표를 통해 최종 결정을 해왔다.

최근 스위스는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기본소득, 기업의 최고임금제 등을 국민투표로 결정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기본소득과 같이 국민의 개별적 이해관계와 직접 연관이 있는 정책들은 인기 영합주의로 흐를 것 같지만, 국민은 집단지성을 통해 현명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 카우프만 씨의 전언이었다.

'한국이 왜 직접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할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는 민주주의에 성공 경험, 강력한 사회 역동성과 시민의 참여의식, 훌륭한 디지털 인프라의 구축 등을 꼽았다. 그의 예측이 맞을지 틀릴 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지난 근대 100년 한국 사회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33년 차의 제6공화국

지난 1987년 제9차 헌법 개정으로 제6공화국이 들어선 지 이미 33년이 지났다. 그동안 제7공화국으로 만들자는 다양한 노력과 시도가 있었지만,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통과시키지는 못했다.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는 전면적으로 헌법을 개정하자는 전면개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퇴장했다. 지난 3월 국회와 시민사회는 국민에게 헌법 개정안 발의권 만이라도 주자는 원 포인트 개헌안을 국회의원 과반의 동의를 얻어 제출했다. 대통령이 공포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국회의원들이 찬반을 결정해야 했는데, 그 마지막 날이 5월 9일이었다. 통합미래당의 무시로 안건은 상정되지 못한 채 폐기되고 말았다.

21대 총선에서 여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함에 따라, 전면적 헌법 개정과 제7공화국 출현을 바라는 목소리와 요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여당과 야당, 국민 다수가 현재의 헌법이 시대정신을 담기에는 너무 낡았음을 인정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분석한 국회 입법조사처의 연구에 따르면, 개헌에 찬성하거나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조사에 따라 61.1~76.9%에 이르렀다. 다만 여야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당리당략으로 인해 의미 있는 논의와 토론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3월 뜻있는 국회의원과 시민사회가 '100만 명 이상의 유권자'들도 헌법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개헌을 국회의원들에게만 맡겨두었다가는 백년하청에 머물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지난 촛불시민혁명, 지방선거와 총선, 코로나19에 대한 사회적 대응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은 이전과 다른 문제의식과 시민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에는 우리 사회가 가장 잘 대응하고 있다는 세계적인 찬사를 받고 있다. 중국과 같은 전체주의적 통제도 없었고, 미국과 유럽의 사재기 같은 혼란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부는 민주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시민은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흔히 하는 오해로 국민에게 국민발안권과 국민소환권을 주고 국민투표권을 확대하면 인기 영합적인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지고, 국가의 위기와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전형적인 대의주의자나 엘리트 민주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스위스나 북유럽의 경우를 보더라도 근거가 별로 없다. 오히려 국민투표의 활성화는 우리 사회처럼 사회적 갈등이 심한 곳에서는 이를 통합하는 촉매제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발안제와 소환제는 존재 자체만으로 대의제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민의를 더욱 수렴해 민주주의의 활성화에 기여한다. 우리 시민이 가진 의식과 역량으로 볼 때, 지금 당장 도입해도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시민의 힘으로 제7공화국을 만들어 갈 때

우리나라는 1948년 민주공화정의 헌법을 제정한 이후 5번의 전면 개정을 통해 6번째 공화국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제1공화국은 이승만 정부 시절이었으며, 제2공화국은 4.19부터 5.16쿠데타까지 짧은 기간이었고, 제3공화국은 1963년 12월 시작된 박정희 정부 시대다. 제4공화국은 1972년 10월 유신부터 전두환 정권의 수립 전까지였으며, 제5공화국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의 집권 기간이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성과로 만들어진 제6공화국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33년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9번의 개정 과정을 거친 헌법은 권력을 연장하려는 대통령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거나 대통령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확보하려는 국회 차원에서 이뤄졌다. 국민의 개헌 발의권은 1954년 제2차 헌법 개정 때 도입되었으나, 1972년 유신헌법에서 폐지된 이후 국민에게는 이름만 들어본 제도였다. 1948년 헌법이 제정된 이후 국민이 직접 헌법의 개정을 시도해본 역사는 없었다. 사라진 제도 때문에 좀처럼 해보기 어려운 상상이었다.

촛불시민혁명으로 태어난 문재인 정부에서 개헌이 이뤄진다면, 그것의 기본정신은 촛불시민정신을 헌법에 온전하게 실현하는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제6공화국의 헌법도 국민의 충분한 의사 수렴 없이 여야 8인의 국회의원이 밀실에서 진행해 시작부터 불충분했다. 더구나 33년을 이어오는 동안 지금의 가치와 시대정신을 담기에는 너무 낡은 그릇이 되어버렸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특징짓는 양극화·불평등과 불균형, 시민의 자유와 기본권의 부족이 현행 헌법 정신의 부재에서 온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최종 주권자인 국민이 발안권, 소환권, 투표권을 가져야만 대의권력을 제어하고 견제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자치와 분권 사회임을 헌법에서 밝히고 법률에서 구체화해야지만 지방자치 3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이 현실적 난관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또 헌법을 통해 불로소득의 원천적 차단을 규정하지 않는다면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던질 마땅한 방법이 없다. 현재의 헌법을 그대로 둔 채, 다소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한다면 기득권자들은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이고, 기존의 질서를 대변하는 데 익숙한 헌재도 위헌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헌법은 이미 구조화되고 만연한 양극화·불평등과 불균형을 극복할 수 없다. 그렇기에 많은 뜻있는 사람들이 제7공화국의 비전과 미래를 만드는 데 노력해왔던 것이다.

제7공화국의 비전과 미래가 가시화되려면 보다 많은 시민이 모이고, 이야기하고, 주장하는 수밖에 없다. 촛불시민이 이제까지 대통령을 바꾸고, 지방정부의 권력을 바꾸고, 국회 권력을 바꾸었다면, 그것의 최종적인 마무리는 헌법을 바꾸는 데 있다. 촛불정신으로 헌법을 바꾸지 못한다면 역사는 언제든지 퇴행할 수 있고, 권력은 다시 10년을 주기로 시계추처럼 단순 반복을 계속할 수도 있다.

제7공화국 비전은 시민의 '실질적 자유와 행복'

제7공화국의 가치와 정신은 무엇보다 시민에게 실질적 자유와 행복을 주는 것이다. 최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시민에게 '실질적 자유'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1987년 시작된 제6공화국의 한계는 '형식적' 민주주의, '형식적' 자유, '형식적' 평등에 특징이 있다. 그럴싸한 제도와 이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은 대부분 형식적이어서 권력과 자산을 획득한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그래서 보통 시민에게는 그저 이름만으로 존재하는 민주주의, 자유, 그리고 평등이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실질적 자유는 시민이 권한과 권력을 직접 행사할 수 있을 때 시작될 수 있고, 실질적 행복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현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각자도생의 무한경쟁 사회에서 국가가 모든 시민에게 육아, 교육, 의료, 주거, 일자리와 노후 등의 기본적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줄 수 있을 때, 마침내 실질적 자유와 행복은 시작될 수 있다. 민주공화국의 헌법을 제정한 지난 72년 동안 국가와 시장은 강력해지고 비대해졌지만,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시민은 여전히 왜소하고 불안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제7공화국은 많은 뜻있는 정치인들이 꾸는 꿈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018년에 개헌안을 통해 새로운 공화국의 모습을 제안했고, 고(故) 노회찬 의원도 평등과 통일을 양대 가치로 하는 제7공화국의 비전을 오래 전에 내보였으며,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시적 슬로건을 내보인 손학규 전(前) 바른미래당 대표도 제7공화국의 실현에 깊은 애정을 보였다. 그러나 그 모두가 제안에 그쳤을 뿐이다. 시대정신을 모으는 데는 실패했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집권여당에 60%의 권력을 주었다.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66.7%의 권력이 필요하다. 나머지 6.7%의 권력은 집권여당이 스스로 만들도록 하는 절묘한 선택이었다. 촛불시민혁명으로 만들어진 이번 정부가 촛불정신을 담는 개헌까지 이룰 수 있다면,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든 정부로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제7공화국을 만들지 못한다면, 4.19혁명과 87년 민주화 운동에 이어 촛불시민혁명에도 '미완'이라는 수식어가 계속 따라 붙을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는 이 점을 깊게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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